Z78 금기 주제들 Taboo Topics

by anmc posted Jun 04,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Z78. 금기 주제들 Taboo Topics

 

 

 

인도로 간 감리교 선교사 이 스텐리 존스(E. Stanley Jones)는 힘든 해를 맞이했다. 그의 충수돌기는 파열되었고, 파상풍이 열흘 뒤에 생겼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몇 명의 다른 선교사가 죽었고 죽은 자들의 사역에 그가 배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1915년 10월에 그의 선교단체에 이렇게 썼다, “우리 모두는 잘 있고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곧 이어 스텐리는 설교와 같은 중요한 시간에 “신경성 졸도”를 경험했다. 그의 정신은 멍해졌고 그는 앉아있어야 했다. 스텐리는 어려운 사건들과 그것들에 대해 그가 어떻게 느꼈는지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 메이블(Mabel)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을 스스럼 없이 얘기했다. 예를 들면 메이블은 1929년 1월 뉴스레터에 이같이 썼다, “딸 유니스(Eunice)와 저는 우리 트리오의 다른 멤버가 아직 미국에 없기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가족으로서 우리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스탠리가 그립다고 선교본부에 ‘말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비록 이 스탠리 존스만큼 어려움을 언급하지 않는 극단적인 선교사는 아주 적지만, “메이블”보다는 “스텐리”와 같은 선교사가 더 많은 것 같다. 몇몇 선교사들은 그들의 후원자들에게는 “스텐리”와 같고 그들의 동료들에게는 “메이블”과 같다.

 

금기(taboo)” 주제들에 대한 침묵은 다른 선교사들이 자신들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믿게 한다. 그러한 선교사들은 그들이 충분히 영적이지 않거나 훌륭한 선교사가 되기에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낙심하고 침묵가운데 고통받을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선교사이기를 포기하고 “탈락자 통계(attrition statistics)”에 포함될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금기 주제에 대한 침묵을 깨고 선교사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해 투명하게 할 때이다.

 

아무도 모든 금기주제를 나열할 수 없겠지만 여기에 몇몇 일반적인 주제들이 있다.

 

다른 문화권에서 사는 것(Living in another culture)은 정말로 힘들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온 세상(all the world)으로 가는” 즐거움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재미없는 일이라고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언어에 능통하고, 훌륭한 사역을 하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들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실제로 “(그들이 가는 세상에 속한) 그들 중 하나”가 아니다. 그들은 항상 아이들이 쳐다보는 “외국인”이고 모임에서는 백인 남녀이다. 항상 눈에 띄지만 실제로 그룹의 필수 구성원이 아닌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은 즐겁지 않다.

 

몇 년 동안만 사역한 선교사들은 종종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 두게 되고 그들은 탈락 통계에 들어가게 된다. 일, 이십 년 사역한 선교사라 할지라도 여전히 문화 스트레스를 겪고 있고, 그들 자녀가 고등학교나 대학 교육 때문에 “본국”에 돌아갔을 때야 안도감을 느낀다. 다른 이들은 선교 본부에서 사역할 자리를 찾는다. 또 다른 선교사들은 본국에서 선교단체 대표가 된다.

 

선교사들은 종종 그들의 친구나 가족들이 그들을 잊었다고 느낀다.

 

선교사들이 타문화권을 섬기기 위해 떠날 때, 그들 친구와 가족 간의 관계가 고국에 있을 때처럼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이메일, 블로그, 페이스북, 그 밖의 여러 소셜 미디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가족사진이 있는 기도편지를 보내고 행복한 비디오 클립을 온라인에 게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그들을 무시하는 친구와 가족에 대해 어떤 것도 게시하지 않게 된다.

 

일 년이 지난 후, 본국 사람들은 그들을 잊은 것 같이 보인다. 선교사들은 대체로 이 금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부는 선교지에 있는 동료에게 불평할지 모르겠지만 후원자, 친구, 가족에게는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고국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는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본국 사람들은 바쁘고 그들에게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덜 상처받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이 “고향”같지 않고 본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잊은 것 같다.

 

재정은 아주 어려운 주제이다. Money is such a difficult issue.

 

  • 후원 요청하기. 선교사들은 종종 충분한 돈이 없고 대체로 재정요청을 어려워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금기 주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후원자들은 선교사들이 후원금을 요청하는 것을 정말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다른 용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축복”의 일부가 되는 “기회”를 원하는 “동역자” 혹은 “챔피언”을 구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재정이지만 그들은 바로 나와서 “제발 좀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 돈을 초월한 것으로 보임. 선교사들은 더 영적으로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믿음으로 걸으며” 또한 “공급하실 하나님을 신뢰한다.” 정말은 가족과 사역을 위한 돈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나가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금기라고 종종 느낀다.

 

  • 돈에 관해 비판적임. 호스트 국가에서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조달할 자금을 모금하는 선교사들은 비판적이 되지 않기가 어렵다. 후원교회가 교회의 특별한 방 색을 바꾸느라고 수 천 달러를 지출했기에 접종을 위한 자금을 주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선교사들이 비판적이지 않기는 어렵다.

 

  • 지출을 숨김. 목회자들은 그들 가족과 교회 멤버와 함께 크루즈를 탈 수 있지만 선교사가 자녀들과 함께 디즈니 크루즈를 탄 것을 인정하면 일부 후원자가 그들을 후원하지 않을 수 있다.

 

선교사들은 “언제나” 이별을 좋아하지 않고 결코 그것은 더 쉬워지지 않는다.

 

신입 선교사들은 그들이 떠날 때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별이 계속 일어난다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사로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본국에 있을 때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여기에 몇가지 예들이 있다.

 

  •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아마 살아계시지 않으실 수도 있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 (1년간) 대학에 가는 자녀에게
  • 부모님이 생의 마지막이시라는 (또한 작별인사를 하러 집에 못온다는) 전화를 받는 것
  • (몇 년에 한 번씩 며칠간만 보는) 자녀들의 학교 브레이크나 방학 때에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것
  • (수 년마다) 고국에 갈 때 선교지에게, 선교지로 돌아갈 때 본국에게
  • (자신의 나라로 갈 수 없을 때) “본국”으로 가는 다른 선교사들에게

 

선교사들은 종종 자신의 표준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들에게 판단받는다고 느낀다.

Missionaries often feel judged by people who don’t live up to their own standards.

 

선교사들은 교회, 선교위원회, 혹은 개인 후원자로부터 특별한 질문을 받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 위원회, 또는 후원자들이 자신들은 하지 않는 일을 선교사들이 하기를 기대할 때 중요한 문제가 있다. 여기에 몇가지 실례들이 있다.

 

  • 질문자들은 선교사들이 작년에 3명만의 회심자를 얻었다고 할 때 비판적이다 (비록 그들의 임무가 초등학교에서 제3문화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인데도). 선교사들은 질문자들에게 작년에 몇 명의 회심자를 얻었는지 묻고 싶어한다.

 

  • 질문자들은 선교사들이 몇 명이나 제자화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질문자들은 단 한 명도 제자화하지 않았으면서)

 

  • (모든 질문자들은 푸드뱅크[food bank]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추수감사식사를 한 번 섬긴 것이 다였으면서) 질문자들은 선교사들이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도왔는지에 대해 비판한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Going back “home)은 힘들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친구들과 가족들을 볼 수 있는 “고국”으로 가는 것을 고대한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한 해 동안 이것을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거문제에 대해 이해한다. 많은 선교사들은 살 장소나, 운전할 차량이나, 접시, 침구, 수건, 요리에 필요한 냄비와 팬과 같은 삶의 필수품들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아마도 그것들을 빌리고 싶지 않다—만일 그 빌린 사람이 좋아하는 접시를 잃어버리거나 깨뜨리면 어떻게 하나? 게다가 선교사들은 전국에 후원자나 후원교회가 있지만 그들은 그 모든 장소를 여행할 여유가 없고 일부 후원자들은 방문하지 않으면 후원을 중단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선교사들은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그들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의 친구나 친척들도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일어난 변화때문에 변하고 있다. 그러한 선교사들은 너무 많이 포기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의 물질주의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한다고 느낄 수 있다.

 

선교사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선교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침묵을 깨고 금기주제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그 주제에 관해 말할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개인이나 부부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모든 이들은 함께 이야기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물론 어떤 선교사들은 상담가와 말하는 것을 원하겠지만, 이 주제는 전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기꺼이 투명하고 싶고 자신감을 유지하려는 누군가이다. 여기에 몇가지 가능성들을 열거한다.

 

  • 같은 선교단체에 있는 친구나 혹 다른 선교단체에 있는 친구와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다.
  •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라.
  • 국제교회(역자주: 선교지에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교회) 안의 누군가와 혹은 자녀들 학교에서 만난 부모와 함께 이야기하라.
  • 당신의 친구가 어디에 있든지 스카입으로 이야기하라.
  • 이메일을 통해 친구와 교신하라.

 

여기에 언급된 모든 금기주제들은 선교사들이 흔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주제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전문가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 이 브로셔는 저자 로날드 코테스키 박사의 원문(Ronald Koteskey: www.missionarycare.com)을 저자의 승인 하에 올네이션스선교센터(www.anmcusa.org)에서 번역한 것으로 한국어 판권은 올네이션스선교센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