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67 완벽주의 Perfectionism

by anmc posted Apr 19,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67. 완벽주의 Perfectionism

 

 

사역의 첫 임기 동안 벳시(Betsy)는 가정부와 관리인을 고용했지만 너무 편하게 사역한다고 후원자들이 생각할까 두려워 기도 편지에는 사람을 구하는 일에 대한 요청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그들의 자녀들이 항상 같은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본국에 집을 한 채 구입했다. 돈을 준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나서 누군가 그들이 SUV- 그것도 렉서스(Lexus)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대리로 융자를 해 주었다. 그들의 후원자들은 분명 후원을 끊을 것이다.                                                                                                                                                                                                                                                                                                                                                                                                                                                                                                                                                                                                                                                                                                                                                                                                      

 

폴(Paul)은 한 그룹의 외국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이 그 나라 말 실력에 대해 창피한 수준이라고 말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임신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웃어 넘겼지만 그는 자신이 바보스럽고 다시는 다른 선교사들의 얼굴을 대면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는 모든 것을 똑바로 하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건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또 선교기관의 월간 소식지에 기고문을 쓰기로 하고 글을 썼지만 그 글이 완벽한 지 보고 또 보다가 원고 마감 날짜를 놓치고 말았다.

 

완벽주의란 무엇인가? What is perfectionism?

 

완벽주의는 몇몇 선교사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성 중 하나이다. 그 특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 완벽주의자들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수행능력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매긴다. 그러나 보통 그들은 실수해서 실망하게 되고 그 실수로 인해 자신에게 매우 비판적이 된다. 그들은 완벽에 이르지 못하는 어떤 것도 쓸모가 없고 만일 그들이 실수하면 사람들에게서 존경심을 잃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아래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된다.

 

  • 불가능한 목표 설정
  • 이런 불가능한 목표 달성에 실패
  • 실패로 인해 덜 생산적이 됨
  • 자신을 탓하고 자존감을 떨어뜨림
  • 다른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더 노력함
  • 완벽주의자들은 보통 기쁨이 없고 우울하고 죄책감이 많고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없는 편인 데다가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운 사람들보다 일을 더 못한다.

 

완벽주의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What is not perfectionism?

 

완벽주의가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같지 않다. 현실적인 목표와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건강한 일꾼은 성취할 수 있는 목표, 다만 그들이 이미 이룬 것보다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잡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실수와 실패도 아주 다르게 해석된다. 탁월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실패는 배움의 기회가 되고 더 열심히 일할 자극이 된다. 그런데 완벽주의자들은 실패나 실수를 개인적인 약점으로 본다.  그들은 야구 선수들이70%의 타율을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탁월한 선수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성경이 완벽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Doesn't the Bible say to be perfect?

 

성경의 많은 구절이 완벽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완벽주의의 경계에 서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사람에게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곳은 거의 없다. 모세가 “너는 네 하나님께 대해 완전할지니라”(신명기 18:13, 킹제임스역)고 말했을 때, 그 구절에서 사용된 히브리 단어 “타밈(tamim)”은 “온전(whole)”이나 “완성(complete)”을 의미한다. 훨씬 최근에 번역된 성경에는 킹제임스역과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신약에는 좀 더 많은 곳에서 크리스찬들에게 완벽하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기록된 몇 구절을 보자.

 

  • 예수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
  • 예수님, “네가 온전하고자 할 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태복음 19:21).
  • 바울,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로새서 1:28).

 

신약에 나오는 이 구절들과 또 많은 다른 구절에서 헬라어 “텔리오스(telios)”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성숙이나 완성을 의미한다. 완벽주의자들이 자신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흠이 없어야 한다고 믿을 지 모르나 텔리오스(완전)는 그런 뜻이 아니다.

 

성경은 완벽주의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가?

 

적어도 완벽주의의 경계에 서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구약 성경 안에 있는 율법과 수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전통을 모두 지키려고 노력했던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들과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비난했고 그런 “죄인”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곡식을 따 먹었다고 예수님을 정죄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 일이 아니었지만 곡식을 거두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었다(마태복음 12:1-14).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같이 되지 말라고 제자들을 경고하셨다 (마태복음 23:1-36).

 

초기 선교사였던 바울은 그 자신이 바리새인이었고 그것도 유대교의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모든 것을 완벽하게 똑바로 행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크리스찬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는 일이라 할지라도(사도행전 23:6; 26:5; 22:3-5).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난 후 바울은 그 모든 “완벽한” 행위들이 쓸데 없는 소모였고 찌꺼기(NIV 성경), 쓰레기(NLT성경), 심지어 배설물(KJV 성경)로 여긴다고 말했다(빌립보서 3:7-9).

 

무엇이 완벽주의를 야기시키는가? What causes perfectionism?

 

몇가지 것들에 의해 완벽주의가 발달할 수 있는데, 가장 흔한 요인은 아마도 성장 과정과 인지적 요인일 것이다.

 

인생의 초기, 어린 아이였을 때 어떤 선교사들은 사람들의 업적이나 성공 정도에 따라 그 인생이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들 선교사들은 그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귀하게 여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다른 선교사들은 그들의 사고 체계, 주로 하나님에 대한 사고가 발달하는데  있어 어떤 오류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개종자의 수를 최소한 어느 정도는 채워야, 또는 많은 시간을 예배나 기도등에 드려야만 자신을 좋아하는 분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키기 불가능한 “권고 사항(should)” 혹은 “의무 사항(oughts)”의 긴 목록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목표에 맞춰 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다른 선교사들이 그들을 아주 성공한 사람으로 보더라도 그들 자신은 자신을 실패자로 여긴다.

 

선교사들은 완벽주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완벽주의자들은 그것을 고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자주 깨닫는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해왔고 멈추고 싶지 않거나 혹은 기쁨도 없고, 기운도 빠지고,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에도 멈추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변화될 준비가 될 때까지 삼 일 동안 앞을 못 보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라(사도행전 9장). 바울이 변화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기 전에 즉시 아라비아로 가서 하나님께서 자기 속에 역사하시도록 맡겼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아라비아에서 하나님과 “독대의” 시간을 가진 후에,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돌아가서 삼 년을 지내고 그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와 사귀고 야고보와도 교제했다(갈라디아서 1:11-24).

 

어떤 선교사들에게는 변화가 너무 힘들게 느껴지고 변화의 과정을 여기에 다 쓰기에는 지면이 부족해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 아예 요점 정리조차 시작을 안 하려고 한다. 변화를 시도하기 원하는 독자를 위해서는 완벽주의에 대해 훌륭한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링크를 소개하겠다. 서호주 정부 보건부 산하 임상중재센터(Center for Clinical Interventions, Government of Western Australia, Department of health)에서 제공된 여러 관점에서 본 완벽주의 Perfectionism in Perspective 라는 글을 http://www.cci.health.wa.gov.au/resources/infopax.cfm?Info_ID=52 에서 볼 수 있다. 이 자료집은 순서를 따라 갈 수 있는 모듈들(modules, 전체의 일부가 되는 구성단위들: 역자 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그 모듈들은 다음과 같다.

  • 완벽주의란 무엇인가?
  • 완벽주의 이해하기
  • 완벽주의가 지속되는 이유
  • 완벽주의 고치기
  • 나의 완벽주의적 행동 줄이기
  • 나의 완벽주의적 사고에 도전하기
  • 도움이 안되는 규칙들과 가정들(assumptions) 바로잡기
  • 성취의 중요성에 대한 재평가

 

전체 구성 Putting it all together

 

이 모듈들은 각각 열 페이지 분량이지만 그 속에는 여러 삽화와 많은 양의 백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듈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대로 순서를 따라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듈 1의 제목과 내가 쓴 이 글의 첫 번째 섹션의 제목이 같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이 글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다른 것들을 시도하기 전에 모듈1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모듈 2, 그리고 그 다음을 하도록 하라.

 

덧붙여, 완벽주의 선교사들이 모듈을 따라 할 때에 그들 만의 독특한 사고와 행동, 그리고 그들이 가진 기독교적 관점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비현실적인 목표들을 나열할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  “내가 가르치는 성경학교 학생들은 모두 나를 좋아해야만 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들을 미워하며 박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0장, 요한복음 15장). 초기 선교사 바울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린도후서 11장).

 

  • 설교할 때마다 나는 많은 사람을 개종 시켜야만 해.” 바울은 아테네에서 훌륭한 설교를 했지만 단지 “몇 명의” 개종자를 얻었을 뿐이었다(사도행전 17장). 어떤 때는 그가 설교하거나 병자를 고쳤을 때  붙잡히거나 도시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한 가지 더 한다면, 비현실적인 목표를  인지할 수 있도록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 될 수가 있다. 그 사람들이 카운슬러나 목회자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선교사를 잘 아는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많은 선교사들에게는 선정된 후원자 그룹이 있어서 완벽주의와 같은 일로 갈등할  때에 “치유” 나 ‘성장”을 위해 기도를 요청할 수가 있다.

 

 

† 이 브로셔는 저자 로날드 코테스키 박사의 원문(Ronald Koteskey: www.missionarycare.com)을 저자의 승인 하에 올네이션스선교센터(www.anmcusa.org)에서 번역한 것으로 한국어 판권은 올네이션스선교센터에 있습니다.